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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림원의 성장

김문동 이사장 – 조용히 자신의 삶을 내어준 사람


김문동 이사장은 젊은 시절 음악을 사랑했고,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습니다. 예술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싶은 소망이 있었던 그는, 오랜 시간 그 길을 꿈꾸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일 앞에서, 조용히 자신의 꿈을 내려놓았습니다.

전쟁 고아들을 위해 향림원을 세운 아버지 김일환 선생. 그 곁에서 자라며 지켜본 삶의 무게는 그를 결국 복지의 길로 이끌었고, 그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향림원을 더 깊고 넓게 만들어가고자 결심했습니다.

김문동 이사장은 장애인이 보호의 대상이 아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 존중받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젊은 시절 미국과 여러 선진국의 복지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장애인도 교육받고, 일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확신을 품었습니다. 그 믿음은 실천이 되었습니다.
‘동현학교’를 통해 교육의 기회를 열고, ‘향림작업장’을 설립해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가족이 없는 중증 무연고자를 위해 ‘품안의 집’을 세웠으며, 제도의 빈틈을 메우고자 ‘향기로운 집’을 열었습니다. 또한 ‘체험홈’과 ‘가온의 집’은 자립을 준비하는 이들이 일상을 연습하고 사회에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실천은 향림원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김 이사장은 경기도사회복지협의회장, 경기도장애인복지시설협회장,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장을 역임하며 현장에서 마주한 수많은 제도적 한계와 공백을 메우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제도를 움직이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그는 복지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지녔습니다. 장애인과 그 곁을 지키는 직원들, 그 누구보다 가까운 이들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다그치고 채찍질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했습니다. 심장 수술을 앞두고도 직원들에게 **“금방 다녀올게요”**라며 밝게 인사를 남기고 병실로 들어갔지만,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의 마지막은 조용했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누구보다 치열했고 단단했습니다. 그 길 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말했습니다.
“가장 힘든 상황에 놓인 이가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합니다.”

그는 조건을 따지는 복지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향림원에는 중증의 질환을 가진 무연고 장애인들이 많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도 손 내밀어주지 못했던 이들이 이곳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철학이었습니다.
그의 뜻은 지금도 향림원 곳곳에 살아 있습니다. 자립을 이룬 이들과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복지 공동체의 삶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김문동 이사장이 그렸던 미래는 단지 ‘복지시설’이 아니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마을,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삶, 그리고 그 삶을 끝까지 지켜보는 손길.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정신은 오늘도 누군가의 곁에서 조용히 동행하고 있습니다.